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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의 천년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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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이스이 작성일21-03-30 16:05 조회6,5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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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

 

목창균 교수(서울신대)

 

 

서 론

 

교리사적으로 볼 때, 종말론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학적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종말론이 중요한 신학적 문제로 등장된 것은 19세기 이후였다.

종말을 현재적인 것으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미래적인 것으로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 현대 신학이 종말론과 관련하여 제기한 주 문제였다.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비롯하여 말세에 일어날 사건들의 시간적 순서에 관해서도 많은 신학적 토의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 왕국의 관계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를 의미하는 천년 왕국은 존재하는가 또는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한다면, 그리스도의 재림 이 전인가, 이 후인가?

이 문제에 대한 신학적 대답은 요한 계시록 201 - 6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에 대한 중요한 해석 방법으로 문자적 해석과 비유적 또는 상징적 해석이 있다. 이 두 방법에 따라, 대략 세 가지 천년 왕국설이 제시되었다. 전천년설, 후천년설 및 무천년설이 그것이다. 전천년설은 문자적 해석에 근거한 반면, 후천년설과 무천년설은 비유적 또는 상징적 해석에 근거한 것이다.

천년 왕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무천년설(amillennialism)이며,

존재한다는 견해가 전천년설(premillennialism)과 천년설(postmillennialism)이다.

그러나 전천년설은 천년 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후천년설은 천년 왕국 이 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천년왕국문제는 성서 예언연구의 중요한 부분이다. 현대에 와서 처음으로 천년왕국 문제가 제기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고대 교회에서도 논란이 된 문제였다. 전천년설적인 천년왕국설이 사도시대와 초기 교부시대를 지배했으나 4세기 말 경 티코니우스(Tyconius)와 어거스틴의 계시록 재해석에 의해 결정적으로 쇠퇴하게 되었다. 그 후 교회는 어거스틴의 천년왕국설을 널리 받아들였다. 천년왕국 문제가 다시 제기된 것은 17세기 이 후 전 천년설이 다시 부흥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20세기에 들어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후천년설, 무천년설 혹은 역사적 전천년설 지지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스도가 어떻게 올 것이며 그가 이 세상에 세울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아직도 논쟁이 계속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방법과 천년왕국설의 문제는 성경 해석상의 문제이지, 성경관과 구원관의 문제는 아니다.

성경 해석의 차이로 여러 천년왕국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와 그 때에 일어날 사건의 순서에 관해서는 서로 의견을 달리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직접 가시적으로 그리고 큰 영광 중에 다시 오신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 한다.

 

따라서 이 중에 어느 한 견해를 절대적인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가 성경과 기독교 전통으로부터 이론의 여지없이 결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 각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천년왕국설의 문제는 성경 해석이나 신앙 전통에 비추어 문제점이 적은 이론을 택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로 이해된다. 필자는 어느 한 이론에 근거하여 다른 이론을 비판적으로 다루기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려고 한다. 세 천년왕국설의 성서적 근거와 중심 교리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천국왕국을 둘러싼 논쟁들을 밝히려고 한다.

그리고 왜 전 천년설이 보다 더 성서에 부합되는지를 제시하려고 한다.

 

I. 전천년설

 

전천년설은 요한 계시록 20장에 대한 문자적 해석에 근거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한 후에 천년 왕국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예수께서 천년 왕국을 이룩하기 위하여 인격적이며 육체적으로 재림할 것임을 믿는 것이다.

사도시대로부터 시작하여 3세기까지 초대 교회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였던 견해이다.

초대 교회는 보편적으로 그리스도의 인격적 재림과 천년 동안 또는 천년 왕국 동안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인격적 통치에 대한 신앙을 고수했다. 이것은 사도적 교부들과 변증가들의 지배적인 신앙이었으며 단지 2세기초의 영지주의자들만이 예외일 뿐이었다.

이 교리는 [바나바의 편지]에 최초로 언급되었으며 헤르마스, 파피아스, 저스틴, 이레네우스, 터툴리안 등이 이를 지지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에 대한 강한 기대를 가졌으며, 세상의 종말과 하나님의 나라가 점진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격변적 사건에 의해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견해를 천년 왕국설(chiliasm)이라 불렀다.

이것은 헬라어 1000 이라는 말 "킬리아스" (kilias)로부터 유래된 것이었다.

3세기 초 천년 왕국설에 대한 반대 이론이 동방교회에서 일어났다.

왜냐하면 박한 천년왕국에 대한 몬타나스주의의 지나친 강조가 오히려 천년왕국에 대한 신뢰성을 손상시켰으며, 성경에 대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영적 해석이 문자적 해석에 근거한 전천년설의 성서적 토대에 큰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천년 왕국설이 서방교회에서 쇠퇴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어거스틴(353 - 430)의 요한 계시록 재해석이었다.

그는 한 때 천년 왕국설의 신봉자였으나, 아프리카의 도나투스주의자인 티코니우스(Tyconius)의 영향으로 그것을 포기했다. 그는 교회가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라고 선언했으며 계시록에 언급된 천년은 일정한 기간이 아닌 세계 역사의 마지막 천년,

 

또는 세계의 전체 지속 기간을 가리킨다고 했다.

 

이것이 중세기 종말론을 주도하게 됨에 따라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부 신비주의적 종파를 제외하고 교회는 미래적 천년 왕국설을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

종교 개혁자들 역시 대부분 어거스틴의 견해를 따랐다. 따라서 전 천년설은 개신교의 주요한 신앙 고백서에 반영되지 못했다. 단지 재세례파와 같은 종교개혁의 급진적인 그룹이 전천년설적인 신앙을 주장했을 뿐이다.

천년 왕국설은 17세기 독일에서의 종교전쟁, 프랑스에서의 위그노 교도들에 대한 박해

그리고 영국에서의 청교도 혁명에 힘 입어 다시 명성을 얻게 되었다.

특히 칼빈주의 신학자 요한 알스테드(Johann H. Alsted)

그의 저서 [사랑받는 도시]를 통해 전천년설을 부흥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18세기 중엽 벵겔의 [계시록 주석](1740)[백성에 대한 설교](1748)는 천년왕국설의 발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를 통해 예언과 계시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집중되고 많은 학자들이 전천년설을 수용하게 되었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전천년설이 보수주의 신학 영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후천년설을 주장한 것에 기인된 바도 없지 않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대주의적 성서 해석과 종말론이 전천년설의 확산을 촉진시켰다.

따라서 전천년설은 보수적인 침례교회와 오순절과 성결파 계통의 교회를 비롯하여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입장의 교회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으며 유명한 부흥사들과 설교가들이 이를 널리 전파했다.

 

전 천년설의 특징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전천년설은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과 미래주의적 해석에 근거하고 있다.

이 해석방법에 따라, 요한 계시록 201-6절에 기록된 천년이란 기간과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에 대한 증거를 마지막 때에 일어날 사건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성경 해석방법이 전천년설과 다른 천년설을 갈라놓는 분깃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전천년설의 핵심은 1000년간에 걸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의 개념이다.

천년왕국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완전한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는 그리스도의 지상통치 기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천년왕국의 기간에 대해서는 전천년설자 가운데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그것을 정확히 문자적으로 1000년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그것을 단순히 긴 기간으로 이해한다.

 

셋째, 전천년설은 천년왕국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이며 가시적 재림에 의해

격변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점진적인 성장이나 발전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거나 인간의 노력이나 사회적 개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울 수록 도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더욱 악화된다.

따라서 천년왕국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에 의해 극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넷째, 전천년설은 계시록 20장의 두 부활은 동일한 유형의 부활, 즉 육체적 부활로 해석한다.

그것은 천년 기간에 일어날 두 다른 집단의 부활, 즉 성도와 악인의 부활을 의미한다.

성도들은 첫 부활에 참여하여 천년왕국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는 반면, 악인들은 천년왕국이 끝난 후 부활한다. 래드는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을 모두 육체적 부활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육체적 부활을 의미하는 동사 '에제산'(ezesan)이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 모두에 똑 같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전 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사건들의 순서에 대한 견해 차이로 말미암아 여러 형태로 나뉘어진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역사적 전천년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 그리고 세상의 종말 이전에 이 땅 위에 천년왕국이 있으리라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일치하지만, 교회의 대환란 통과와 휴거의 시기문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입장을 달리한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휴거가 대 환난 전에 있으며, 교회는 대 환난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반해, 역사적 전천년설은 휴거는 대 환난 끝에 있으며 교회는 환난을 통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전자는 천년왕국의 성서적 근거를 주로 구약성서에 두는데 비해, 후자는 그것을 오직 신약성서에만 둔다.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에 따르면, 마지막 때에 세계적인 7년 대 환난이 있게 되고 그 직전에 그리스도께서 공중 재림하신다. 이 때 죽은 성도가 부활하여 살아있는 성도와 함께 공중으로 휴거되여 강림하시는 그리스도를 공중에서 영접하며 대 환난을 피하게 된다(살전 4:16). 칠년 동안 진행되는 어린양의 잔치에 휴거된 자들이 참여하여 기쁨을 나누는 동안 지상에서는 7년 대 환난과 적 그리스도의 통치가 전개된다(9:24 -27).

 

대 환난의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재림하여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 악의 세력을 정복하고 사단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가둔다. 그리고 천년 왕국을 건설하여 성도들과 함께 왕 노릇 하신다. 천년 왕국이 끝나면 사단이 일시 풀려나고 곡과 마곡의 반란이 일어난다.

그러나 사단의 세력은 불로 섬멸되고 사단은 불 못에 던져진다.

그 후 악인들이 부활하여 최후 심판(백보좌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가고, 성도들은 영원한 천국(신천신지)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요한 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그 내용을 순서대로 배열한 것이다.

 

이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미국의 침례파, 성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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