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과 용의 전쟁 (이한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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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이스이 작성일23-03-11 10:02 조회7,452회 댓글0건본문
여인과 용의 전쟁 (이한수, 계 12:1-17)
마지막 일곱 대접 심판보다 선행하는 본 섹션(12-14장)은 하나님과 악의 세력들 간의 영적 전쟁이란 주제를 넘겨받아 발전시킨다. 물론 이 주제는 앞선 섹션에서 이미 몇 차례 등장한 바 있다(3:10; 6:9-11; 7:14; 11:7-10). 12장은 아이를 잉태한 여인을 삼키려는 용의 비유를 사용하여 사탄이 메시아를 생산한 교회공동체를 멸하려고 공격하지만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보호와 양육을 받게 되는지를 묘사한다면, 13장은 동일한 메시지를 다루되 이번에는 용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두 짐승이 교회공동체를 어떻게 박해하는지를 다룬다. 14장은 어린양의 메시아 전쟁에 참여하는 144,000명이 어떻게 두 짐승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하게 되며(1-5절) 또한 (추수 이미지를 동원하여) 최후심판이 어떻게 짐승 숭배자들에게 임할 것인지를(6-20절)을 묘사한다.
여인과 용의 전쟁
본문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주석
본 섹션의 환상 장면은, 많은 주석가들이 인정하듯이, 계시록 전체의 중심 주제를 서술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용과 그의 추종자들과 전쟁을 하고, 어린양과 그를 따르는 144,000명이 두 짐승과 싸우는 것은 계시록의 핵심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요한은 고대근동이나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신화적 전설들을 끌어다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배후에 놓인 요한 자신의 목적은 사뭇 복음적이고 구원사적이다. 하나님과 사탄 간에 벌어지는 영적 전쟁은 실제 인류역사 가운데서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Osborne, 2002: 454). 또한 요한은 신화적 환상 장면들을 동원하여 복음을 제시한 것은 그리스-로마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는 목적을 지녔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요한의 환상 언어는 구약적 배경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Beale, 1999: 624f). 이것은 여인과 용의 환상 장면 묘사가 고대근동이 아니라 구약의 세계관에 뿌리를 박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1-2] 요한은 아이를 잉태한 한 여자 환상을 보았는데, 그녀는 해를 옷 입고 발아래 달이 있고 머리에 열두 별의 관을 쓴 여자였다. 요한은 이 환상을 “하늘에 큰 이적”으로 부른다. 한글성경은 ‘이적’이란 술어를 썼지만 그것은 본래 ‘표적’ 또는 ‘징조’(sign)를 가리키는 말이다. 신약에서 표적은 어떤 실체를 나타내거나 알리는 역할을 하거나, 또는 사건이나 대상이 지닌 보다 깊은 영적 의미를 지칭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면, 예수의 기적 행위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 임했다는 사실을 나타내주는 표적이다. “하늘에 큰 표적”이란 표현은 신적인 출처를 지녔으며 아주 중대한 내용을 지닌 징조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표적의 첫 내용은 여자가 “해를 옷 입고” 있었고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다”는 것이다. 해, 달, 별이 모두 빛을 발하는 발광체이다. 이것은 여자가 찬란한 영광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이들 세 발광체는 구약에서 언약백성 이스라엘을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한다(창 37:9; 단 12:3; 사 60:19-20). 특별히 주목할 것은 여자가 머리에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다는 표현이다. 면류관은 구약에서 승리, 영광, 통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은유이다. “열두 별의 면류관”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신 승리와 영광을 상징하는 것 같다. 특별히 ‘열두 별’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지칭하는 전형적 표현이다. 하지만 ‘여자’의 정확한 정체는 논란거리이다. 어떤 학자들은 그녀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들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하고, 어떤 학자들은 그녀가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필자는 1절의 여자가 전체 하나님백성 공동체를 지칭한다고 본다(Lohmeyer, 1926: 96; Osborne, 2002: 457). 요한은 환상 중에 아이를 잉태한 여자를 보았는데, 그녀는 해산의 진통으로 아파서 부르짖고 있었다. 강조점은 해산의 고통에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백성의 고난은 흔히 메시아와 새 시대가 오기위한 전조적 진통으로 묘사되곤 했다(사 26:17; 66:7-8; 믹 4:10)(Johnson, 1982: 514; Osborne, 2002: 457). 본문은 예수를 낳기 위해 마리아가 진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백성 공동체가 겪는 시련과 고통을 통해 메시아가 오셨다는 것을 묘사해준다.
[3] 요한은 하늘에서 “큰 붉은 용”에 관한 또 다른 표적을 보았다. 큰 붉은 용은 나중에 9절에서 사탄 또는 마귀로 동일시된다. 붉은 용이 여기서 소개되는 것은 사탄을 여자의 대적자로 제시하기 위함이다. ‘용’은 구약에서 이집트나 이집트의 왕 바로를 상징하는 언어로 사용되곤 했는데(사 51:9; 겔 29:3), 12장에 등장하는 출애굽 모티브와 잘 어울린다(Beale, 1999: 632). 사탄이 “큰 붉은 용”으로 제시된 것은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했던 것처럼 사탄이 용과 같이 파괴적인 큰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용이 ‘붉은’ 색을 띤 것은 사탄이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를 흘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 같다. 여기서 용은 몇 가지 방식으로 묘사된다. 첫째로, 용은 “머리가 일곱”을 지닌 괴물이다. 어떤 학자들은 일곱 개의 머리들이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 찾아내려고 애쓰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일곱 머리의 은유는 시편 74:13에서 끌어온 것으로 사탄이 하나님의 주권을 흉내 내어 땅의 주권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음을 함축할 수 있다(Osborne, 2002: 460). 둘째로, 용은 “열 뿔”을 갖고 있다. 고대에는 ‘뿔’은 권세와 능력을 상징한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어떻게 조합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일곱 머리와 열 뿔은 사탄이 온갖 사악한 힘과 권세를 가지고 세상의 주권자 행세를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유사한 묘사가 13장과 17장에서도 등장한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도 일곱 머리 열 뿔을 지녔고(13:1), 음녀가 올라탄 짐승도 일곱 머리 열 뿔을 지녔다. 이것은 사탄과 짐승이 사악한 힘과 권세를 공유하고 땅의 거주자들에게 주권자 행세를 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하지만 계시록 5:6에 따르면 어린 양만이 “일곱 뿔”을 지닌 진정한 정복자로 묘사된다. 셋째로, 용은 일곱 머리에 “일곱 왕관”을 쓰고 있었다. ‘왕관’은 통치자가 쓰는 관을 지칭한다. 때문에 사탄이 그리스도께서 쓰신 면류관을(19:12) 모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Osborne, 2002: 460). 신약에서 마귀는 “이 세상의 임금”(요 12: 31; 14:30),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 “이 세상의 신”(고후 4:4)으로 불린다. 하지만 마귀는 거짓 임금에 불과하다. 그의 통치는 잠시일 뿐이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완성되면 무너지고 말 것이다.
[4] 용이 큰 권세를 가졌다는 것은 그 꼬리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는” 괴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니엘 8:10을 반영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이 구절의 ‘별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나 천사 중에 어떤 것을 지칭하는지를 놓고 해석을 달리한다. 다니엘서에서 천사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변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다니엘 12:3의 경우에 의인들이 하늘의 별들로 비유되는 것으로 보아 ‘별들’은 천사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뜻할 수도 있다(마 13:43). 이것은 하나님백성이 하늘에 그들의 정체성의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Beale, 1999: 635, 1:20 주석 참조). 그렇다면 용이 하늘의 별들을 땅에 던졌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천사들의 타락사건을 가리키기보다 하나님백성이 사탄에게 박해를 당하는 사건을 가리킨다(Moffatt, 1970: 424). 하나님백성은 천상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사탄이 그들을 공격한다는 것은 그들을 대변하는 천사들에 대한 공격을 뜻할 수도 있다. 4절에 함축된 박해의 시점은 메시아의 탄생 이전이다. 그렇다면 요한은 본 절에서 메시아 탄생 이전에 하나님백성이 불경건한 나라나 통치자들에게 당한 박해와 꼬임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별들의 ‘삼분의 일’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하나님백성에 대한 사탄의 공격이 부분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참 하나님백성은 궁극적으로 보호를 받겠지만 그들도 사탄의 공격을 면할 수는 없다.
본 절 후반부는 언약백성 공동체가 메시아를 낳으면 그를 없애버리기 위해 응시하는 용의 모습을 묘사한다. 용의 공격 대상은 여자 자신이 아니라 여자가 낳을 아이였다. 용이 아이를 공격 표적으로 삼은 것은 아이가 메시아라는 사실과, 메시아가 태어나면 자신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길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계시록의 묘사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면들을 갖고 있다. 아이가 출생하기도 전에 용이 그를 공격하려고 했고, 태어나자마자 아이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11:4의 이야기도 공관복음서의 서술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메시아의 탄생과 승천만 서술할 뿐 그가 죽게 된 과정을 생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용이 그를 죽이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헤롯이 세 살 이하 유아들을 학살한 사건을 생각나게 만들고(눅 4:28-30), 아이가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갔다”(5절)는 말은 예수의 승천 사건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사탄의 공격 시점은 메시아 탄생 이전부터 그의 사역이 끝나는 지점까지 전 기간을 포괄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Beale, 1999: 637). 사탄은 메시아 예수가 태어날 때 헤롯을 동원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고, 공생애 초기에 광야에 나가 금식할 때 그를 유혹하려고 했으며, 나사렛의 군중들을 동원하여 그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죽이려고 했으며, 결국 십자가는 아이를 집어삼키려는 용의 시도들 가운데 최종적인 목표였다. 사탄이 아이를 잉태한 여자 앞에 있었다는 것은 그가 교회공동체와 메시아를 통해 이루려고 하는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항상 위협하는 세력이라는 것을 후대 교회에 보여준다(Johnson, 1982: 515).
[5] 본 절은 여자가 낳게 될 아이의 전 생애, 즉 그의 출생, 왕이 될 미래 운명, 승천 등을 간략하게 서술한다. 우선 아이의 신분은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통해 표현된다. 2절에 언급된 ‘아이’는 5절에서 ‘아들’ 그리고 ‘남자’로 동일시된다. 이것은 남자 아이로 태어난 메시아 예수의 성적 정체성을 나타내준다. 둘째로, 아이의 정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는 표현을 통해 함축된다. 이것은 시편 2:7-9의 표현을 암시한다. 시편 2편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세상의 모든 원수들을 패배시키고 장차 온 땅의 통치자로 등극할 것을 예언한다. 본 절에서 메시아를 ‘남자 아들’로 명시한 것은 시편 2편 예언이 예수를 통해 성취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이것은 계시록 2:26-28을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인자 되신 예수는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트리는 것과 같이 할” 권세를 가진 다윗 계통의 왕적인 메시야이며, 그는 이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았다. 셋째로, 하나님은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셨다.” 이 표현은 메시아 예수의 승천 사건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올려갔다’(h`rpa,sqh)는 동사는 ‘갑자기 채가다’를 뜻하는 강한 술어이다(BAGD, 109). 그렇다면 사탄이 예수를 ‘삼키려고’ 하자 하나님이 그를 부활시켜 하늘로 ‘채가셨다’는 뜻이 된다. 예수를 삼키려는 사탄의 시도는 그의 부활과 승천을 통해 좌절된 셈이다(Beale, 1999: 639). 주목할 것은 아이가 “하나님 앞으로” 올려간 것만 아니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왕권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계시록 22:1을 보면 ‘보좌’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 언급된다.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 앉아 다스릴 보좌는 하나님 자신의 보좌이다. 하나님의 우주적 왕권은 이제 승천하신 예수의 것이 될 것이다.
[6] 메시아 아이가 하늘로 올려가자 용의 공격 표적은 이제 그를 낳은 여자에게로 옮겨가게 되었다(13절 참조). 여자가 ‘광야’로 도망한 것은 용의 공격을 피하기 위함이었다(14절). 어떤 학자들은 여자의 광야 도피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초기 예루살렘 기독교인들이 펠라로 피신한 사건을 지칭한다고 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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