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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증인 (이한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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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이스이 작성일23-03-11 09:59 조회2,060회 댓글0건

본문

두 증인 (이한수, 계 11:1-14)


두 증인(11:1-14)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듯이 두 증인에 관한 본문의 이야기는 계시록에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논쟁은 주로 세 문제와 연관된다첫째는 본문에 등장하는 표현들(성전거룩한 성제단촛대두 증인마흔 두 달)을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세대주의자들은 상기 표현들을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하기를 선포하는 반면많은 학자들은 그것들을 상징적인 의미로 취하기를 선호한다둘째는 상기 표현들이 유대 민족과 유대교 성전의 미래를 지칭한다고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전체 교회 공동체의 미래를 지칭한다고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세대주의 학자들은 상기 표현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교 성전의 재건과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묘사한다고 해석하기를 선호하는 반면많은 학자들은 계시록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구분이 없어지고 전체 기독공동체의 미래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상기 표현들이 전체 교회공동체의 미래를 묘사한다고 해석하기를 선포한다셋째는 본문에 등장하는 두 증인이 재림 직전에 활동하게 될 비범한 개인들을 지칭하는가 아니면 초림 이후 전체 교회공동체를 상징하는가 하는 문제이다필자는 계시록의 묵시적 장르에 주목할 때 상기 표현들은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며또한 10장과의 연속된 문맥을 고려할 때 전체 기독교회의 사명과 미래를 묘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본문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2)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그들의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13)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14) 둘째 화가 지나갔으니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주석

 

[1-2] 1절과 2절의 내용은 상호 대조적인 상황을 묘사한다전자는 성전과 제단과 그 예배자들을 측량하라는 명령을 담고 있지만후자는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는 명령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우선 요한은 성전 측량의 도구로서 지팡이 같은 갈대를 하나님에게서 받는다이것은 큰 건물이나 장소를 재는 도구로서 3미터 가량의 측량자이다요한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할” 것을 지시받는다구약에서 성전측량에 관한 이야기는 에스겔 40-48장에 등장한다에스겔서에 나타난 성전측량 환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좀 모호한 편인데 그 모호성이 계시록 본문에도 연장된다갈대자로 측량하는 것은 구약에서 여러 은유적 의미들을 지닌다자나 줄은 어떤 것을 확장하거나 증축할 목적으로 사용되곤 했기 때문에(슥 1:16) 본문의 성전측량은 성전의 회복과 재건을 지칭할 수도 있다또한 자와 줄은 파괴할 목적으로 어떤 것을 표시해둘 목적으로도 사용되기도 했다(암 7:7-9). 하지만 본문의 성전측량에 두 번째 의미를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요한에게 갈대 자로 성전을 측량하라고 했을까? 2절에서 하나님은 요한에게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도록 그냥 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는 것은 영적인 안전과 보호를 위한 조치로 이해된다(Johnson, 1981: 500). 계시록 21:15-17에서도 천사가 금 갈대 자로 거룩한 성을 측량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여기서도 천사가 상해나 부정에서 보호하기 위해 거룩한 성과 그 거주자들을 구분 짓기 위해 측량한다그렇다면 요한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여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도록 허용되는 성전 바깥마당을 구분하는 셈이다.

 

성전’(naos)은 보통 성전과 관련된 전체 부분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지만 2절에서 그것은 성전 바깥마당과 구분되기 때문에 제사장만 출입하는 제한된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중요한 것은 성전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는 것이다세대주의자들은 본문의 성전을 재림 직전 대환란기에 회복될 문자적인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고 본다(Seiss, 1966: 233-41; Walvoord, 1966: 175-77). 하지만 요한도 8절에서 큰 성을 소돔이나 애굽을 지칭하는 영적인 의미로 제시하기 때문에 본문의 성전도 그런 영적 의미로 쓰인 것이 분명하다교회를 성전으로 비유하는(엡 2:21-22) 신약 저자들의 전통을 따라 많은 주석가들은 본문의 성전이 교회공동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한다(Osborne, 2002: 412f; Beale, 1999: 558). 다만 이 영적 해석을 취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난제를 풀어야 한다요한은 왜 성소가 측량 대상으로서 보호를 받지만(1), 성전 바깥뜰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게 되는가이 의문은 성소와 성전 바깥뜰이 교회공동체를 두 다른 관점에서 묘사한 것으로 보면 해소될 수 있다측량 대상이 된 성소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게 될 교회의 내면적 모습을 나타낸다면측량 대상에서 제외된 성전 바깥뜰은 이방인들에게 박해를 받는 교회의 외적인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Minear, 1966: 98; Sweet, 1979: 183f). 성전 바깥뜰을 짓밟는 이방인은 유대인과 구분되는 이방인을 지칭하기보다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불신앙하는 세상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술어이다계시록에는 이방인이란 술어가 16회 등장하는데예외 없이 모든 경우는 하나님을 반역하는 땅의 백성들이나 또는 구속받은 땅의 백성들을 가리킨다(Johnson, 1981: 502).

 

성소와 구별되는 거룩한 성’(2)은 무엇을 가리키는가성전제단성전 바깥뜰과 같은 언어들을 문자적인 의미로 취해야 한다면 거룩한 성도 문자적인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하지만 예루살렘 성을 짓밟는 이방인들이 어떻게 성전 바깥뜰만 짓밟고 성소는 그냥 내버려둘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을 침공한 이방인들은 자연히 성소와 성전 바깥뜰을 막론하고 모든 것을 유린하고 짓밟곤 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본문의 묘사는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짓밟고 유린할 실제의 역사적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필자는 앞에서 성소나 성전 바깥뜰이 교회공동체를 두 다른 관점에서 묘사한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에이방인들에게 짓밟히게 될 거룩한 성도 세상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Osborne, 2002: 413).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 사람들에 의해 육신적으로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지만그들의 영혼은 우상숭배로 인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성전 바깥뜰을 이방인에게 내어준 시기는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는” 시기와 동일하다(2). 거룩한 성을 짓밟는 마흔두 달이란 기간은 요한이 짐승의 지배를 받는 시기와(13:5-7) 정확하게 일치한다또한 이 기간은 아이를 낳은 여자가 용을 피해 광야로 가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1260’(12:6) 또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12:14)와도 같은 기간이다(12:6). 다니엘서에서 이 기간은 하나님 백성이 고난을 받지만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시기로서 종말론적 의미를 갖는다(단 7:25; 9:27-12). 문자적 해석을 선호하는 세대주의자들은 본문의 기간이 재림 직전 7년 대환란 기간 중에서도 후 삼년 반을 지칭한다고 보지만(Walvoord, 1966: 178), 묵시장르에 속한 계시록에서 그것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이 분명하다계시록 12장에서 용의 공격을 피해 광야로 피신하여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여인이 교회공동체를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마흔두 달이란 기간은 교회시대’ 즉 예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Beale, 1999: 567; Giesen, 1997: 246f). 이 기간은 교회공동체가 세상에서 복음증거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땅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당하기도 하지만(11:3)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양육과 보호를 받는 기간이기도 하다(12:6).

 

[3] 거룩한 성과 성전 바깥뜰이 이방인에게 짓밟히는 마흔두 달’(11:2)의 기간은 두 증인이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하는 ‘1260과 사실상 같은 기간이다두 증인 이야기는 처음 여섯 나팔 재앙과(8:6-9:21)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 재앙(11:15-19) 사이에 삽입된 세 막간들 중 세 번째 막간 이야기이다그리고 이 세 번째 막간인 두 증인’ 이야기는 첫 번째 막간인 천사와 작은 책’ 이야기(10:1-11)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11:1-2에서 요한은 교회공동체를 두 다른 측면에서 묘사했다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사람들에게 육신적인 박해와 고난을 당하겠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다그리고 11:3-13은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이유에 대해 그들이 세상에서 예언하는 요한의 사명에 동참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준다요한이 힘센 다른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 책을 갖다 먹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다시 예언하는”(10: 11) 사명을 받았던 것처럼교회공동체를 상징하는 두 증인’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일 동안 예언하는” 사명을 감당한다(11:3). 이것은 두 증인의 예언사역이 요한이 위임을 받은 예언사역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함축해준다(이필찬, 2006: 482).

 

학자들은 두 증인이 역사 속에 존재할 문자적인 개인들이나 그룹을 지칭하는가 아니면 교회공동체를 상징하는 비유적 언어인가를 놓고 큰 의견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문자적인 개인들로 보는 학자들은 두 증인을 에녹과 엘리야로 동일시하기도하고(Tertullian) 돌아온 모세나 엘리야(Charles, 1920: 1:281)로 또는 모세와 엘리야의 역할을 할 미래의 두 선지자들로 동일시하기도 한다(Beckwith, 1922: 595; Wong, 1997:347-50). 이와는 달리 다른 많은 학자들은 두 증인이 성전제단성전 바깥뜰거룩한 성(11:1-2)과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복음의 말씀을 증언하는 교회공동체를 가리키는 상징어라고 해석한다(Beale, 1999: 572). 또 다른 학자들은 위 두 견해를 조화시켜 두 증인은 전체 교회시대 동안 그리스도를 증언함으로써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하는사도 요한처럼 교회내의 개인들을 지칭한다고 보기도 한다(Johnson, 1981: 504). 이렇게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본문이 지닌 해석의 난점을 나타내준다두 증인이 단순한 두 개인들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본문을 조심스럽게 관찰할 때 자명하다(Johnson, 1981: 504). 첫째그들은 예언도 함께 하고 고난도 함께 당하고 죽임도 같이 당하고 부활도 같이 하며 승천도 같이 하는 등 모든 일들을 함께 하고 겪는 것으로 묘사된다이런 일들은 그들이 단순한 개인들이라면 일어날 수 없다둘째짐승이 두 증인과 전쟁을 일으키는데(7짐승이 교회공동체가 아니라 개인들과 전쟁한다는 것은 좀 이상한 장면이다셋째온 세상 사람들이 죽임당한 두 증인의 시체를 보고도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했다고 했는데(9), 만일 두 증인이 개인들이라면 어떻게 온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시체를 볼 수 있겠는가넷째두 증인은 4절에서 두 촛대로 명명되는데사실 두 촛대는 1-2장에서 교회를 상징하는 술어이지 개인들을 가리키는 술어는 아니었다우리는 앞에서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이 요한의 예언 사명을 넘겨받은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그렇다면 두 증인의 예언 사명은 교회공동체 구성원들이 사도 요한의 예언 사명을 넘겨받아 수행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교회는 단순한 집단이 아니라 세상에서 예언의 말씀을 증언하는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본 절은 그리스도께서 두 증인에게 권세를 준” 것으로 묘사된다. 3절 상반절과 하반절의 내용을 연결해서 살펴보면 두 증인에게 주어진 권세는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는” 권세를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앞서 지적한 것처럼 예언하는’ 일은 사도 요한에게 주어진 사명인데이제는 두 증인이 감당해야 할 사명으로 언급된다미래시제 동사가 사용된 것은 언제 어디서나 계속해야 할 행위라는 것을 말해준다(Beale, 1999: 572). “굵은 베옷을 입고란 표현은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이 사람들의 회개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구약에서 베옷은 죄와 심판에 대해 애통해 하며 회개하는 일을 묘사할 때 자주 동원되는 은유적 언어이다(욜 1:8; 암 8:10). 두 증인이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예언해야 할 1,260일은 거룩한 성과 성전 바깥뜰이 이방인에게 짓밟히는 마흔두 달과 동일한 기간이다어떤 세대주의 학자들은 두 증인의 예언사역이 재림 직전 7년 대환란 기간에 있을 것으로 내다보지만필자가 앞서 관찰한 것처럼이 기간은 교회시대즉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인 것이 분명하다본문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예언을 하는 이 기간 동안에 이방인즉 세상 사람들에게 박해와 고난을 당하게 될 것임을 말해준다.

 

[4] 본 절에서 두 증인은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로 묘사된다계시록 1:20에서 일곱 촛대는 교회를 상징하는 언어였던 것처럼본 절의 두 촛대도 교회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신구약 성경에서 이란 숫자는 참된 증거를 지칭하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민 35:30; 신 17:6; 마 18:16; 딤전 5:19). 두 증인 또는 두 촛대로 상징되는 교회공동체는 세상에서 참되고 진실한 증인 역할을 담당한다교회를 두 감람나무로 비유하는 것은 스가랴 4장의 내용을 배경으로 한다특히 스가랴 4:1-6, 10-14에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은 온 세상의 주를 섬기기” 위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묘사된다이들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성전건축의 책임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계시록 11장의 두 증인도 온 세상에 증인 사역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특히 스가랴서 4장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두 감람나무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왕족인 스룹바벨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면(Osborne, 2002: 420), 두 증인이 제사장적이며 왕적인 신분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요한이 교회공동체를 묘사하기 위해 두 증인두 촛대두 감람나무란 상징어를 끌어다 쓴 데는 신학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 ‘이란 숫자는 법적 증인에게 요구되는 숫자일 뿐만 아니라 교회가 지닌 제사장적이며 왕적인 역할들을 반영한다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은 옛 공동체나 옛 성전과 관련된 인물이라면그리스도는 새 공동체와 새 성전에 관련된 분이다그는 제사장과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야이기 때문에메시야 공동체인 교회는 자연히 구약시대에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이 지녔던 제사장적이며 왕적인 성격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Johnson, 1982: 505).

 

[5] 본 절은 그리스도께서 두 증인을 어떻게 보호하실 것인지를 설명한다만일 누구든지 두 증인을 해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이 그들을 소멸하고 죽일 것이다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보호하신 사건을 기억나게 만든다(왕하 1:10; 렘 5:14). 아하시야 왕은 전쟁에 나갈 때 하나님께 묻지 않고 에그론 신 바알세불에게 물으려고”(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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