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000명,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이한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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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이스이 작성일23-03-11 10:06 조회7,445회 댓글0건본문
144,000명,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이한수, 계 14:1-5)1
어린양과 144,000명
본문
(1) 또 내가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당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주석
본 단락은 어린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서 있는 144,000명을 소개하고(1절),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소개하며(2 –3절), 그들이 속량을 받아 하나님과 어린양의 백성이 된 사실을 소개한다(4-5절). 13장과 14장간에는 여러 흥미로운 대조들이 나타난다. 하늘의 영역과 땅의 영역, 땅에서 활동하는 짐승과 하늘에 계신 어린양, 땅에 사는 자들과 하늘에 사는 자들, 손과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서로 날카롭게 대조를 이룬다. 이런 대조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인지를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1] 요한은 어린양이 시온산에서 144,000명과 함께 서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용이 짐승을 호출하기 위해 바닷가에 서있는 것과 대비를 이룬다. 본 절의 ‘시온 산’은 하늘에 있는 시온산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앞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13장과 14장은 땅의 영역과 하늘의 영역을 각각 묘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늘 시온산에 어린양과 함께 서있는 144,000명은 어린양의 피로 속량 받아 궁극적 승리를 얻은 천상적인 교회공동체를 지칭한다(이필찬, 2006: 607). 요한은 이미 13:6에서 성도들을 “하늘에 사는 자들”로 표현한 바 있다. 그들은 지상에서 짐승의 공격과 비방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들의 진정한 신분은 하늘에 있다. 144,000명은 이미 7장에서 등장한 바 있지만 그곳에서 그들은 지상에서 어린양과 함께 메시아 전쟁에 참여한 군사들로 제시되었다. 반면에 14장에서 그들은 시온산에서 어린양과 함께 승리를 쟁취한 천상적인 교회공동체로 그려진다. 같은 실재를 땅과 하늘의 시각에서 각각 달리 묘사하는 것은 계시록 저자의 특징적인 서술방식이다.
144,000명은 “그들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을 지닌 자들이다. 이것은 땅의 거주자들이 오른손과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은 것과 대조를 이룬다(13:16). 이마에 어떤 사람의 이름을 썼다는 것은 소유권이 그에게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린양과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들로서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7:4).
[2] 요한은 또한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 소리의 출처가 하나님인지 천사들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천사들의 우렁찬 찬양 소리로 보인다. 그들의 찬양 소리는 요한에게 큰 인상을 주었던지 삼중적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고,” 또한 “거문고 타는 소리와도 같았다.” 천사들의 합창은 굉장히 컸지만 하프를 연주하는 것처럼 멜로디를 지닌 아름다운 소리였다. 본 절에서 ‘하프’가 등장하는 것은 3절의 ‘새 노래’와 연관된다.
[3] 본 절은 144,000명이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묘사한다. 여기서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은 4:4-11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싼 천상적 존재들의 정황과 연관된다. “보좌 앞에서”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불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앞에서 부르는 144,000명의 노래는 ‘새 노래’로 불린다. 그것은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는” 그런 특별한 노래였다. 왜 그들만이 배워 부를 수 있는 노래인지는 언급되지 않으나, 새 노래가 어린양의 구속이란 사실과 연관된 노래라는 것은 분명하다. 구속 받은 경험이 없는 자가 새 노래를 부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Morris, 1987: 170). 짐승의 표를 받아 그의 지배를 받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이 어떻게 천상백성이 부르는 구속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4-5] 본문은 새 노래를 부르는 자들의 신분에 대해 몇 가지로 소개한다.
첫째, 그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들”이다. 요한이 여기서 독신생활만을 순결한 것으로 여긴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신약 저자들은 결혼한 사람들의 성생활을 부정한 것으로 여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히 13:4). 신약에서 ‘더럽히다’란 동사는 주로 간음이나 음행과 연관하여 자주 등장하는 술어이지만, 계시록에서 그것은 또한 영적인 간음이나 음행을 묘사하는 술어로 사용되기도 한다(2:14, 21). 신구약 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정결한 처녀로 묘사할 뿐만 아니라(사 37: 22; 암 5:2; 고후 11:2)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하나님을 배반한 간음과 음행으로 정죄하곤 했다(호 2:2-5; 3:1; 9:1).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야고보도 하나님과 등지고 세상과 벗하며 살아가는 신자들을 가리켜 ‘간음한 여인들’로 부르기도 한다(약 4:4). 짐승숭배가 강요되는 상황에서 상기 문구는 우상숭배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께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성도들의 거룩한 모습을 상징하는 비유적 표현인 것이 분명하다(Morris, 1987: 170).
둘째, 그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다. 짐승의 표를 가진 자들이 그에게 절하며 그를 추종하듯이, 144,000명은 어린양의 인침을 받은 자들로서 그를 순종하며 따라가는 자들이다. 구약에서 ‘인도하다’, ‘따르다’ 동사는 목자의 인도가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시 23:1-2). 그렇다면 144,000명은 메시아 전쟁에 참여한 어린양의 군대이며(7:4-8),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영적 순결을 지키는 어린양의 신부이며(14:4a), 또한 목자의 인도를 따라 어디든지 따라가는 어린양의 양떼이다(14:4b).
셋째, 그들은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다.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란 본 절의 문구는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이란 3절의 문구와 유사하다. 144,000명은 땅의 거주자들 중에서 어린양이 자신의 피 값을 지불하고 산 자들이며(5:9), 첫 열매의 거룩한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진 자들이며(14:4c), 예수께서 그의 피로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한 자들이다(1:5). 이것은 하나님백성이 계시록에서 매매 언어나 희생 제물의 언어로 또는 해방의 언어로 묘사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첫 열매’는 구약의 희생 제사를 배경으로 한 언어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한 해 농사지은 것 중에 처음으로 거둔 첫 열매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다(Osborne, 2002: 530). 어떤 배경에서 이해하든 144,000명은 어린양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 소유권이 이전되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백성이 되었다.
넷째, 그들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에게는 거짓이 없기 때문에 입으로 거짓을 말하는 것은 그의 거룩한 백성의 신분에 부합하지 않는다(사 53:9; 습 1:3). ‘흠이 없는’이란 표현도 제사용어이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흠이 없는 온전한 제물을 드려야 그가 열납하신다. 144,000명은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만한 온전한 제물로 그에게 드려진 백성이다.
해설
앞의 장은 지상의 장면을 다루었다면 14장은 하늘의 장면을 다룬다. 지상에서 용의 분신인 두 짐승이 성도들을 핍박하는 일들이 일어난다면, 하늘에서는 자신을 우상숭배로 더럽히지 않고 궁극적 승리를 쟁취한 성도들에 대한 천사들의 찬양이 울려 퍼진다. 본 섹션은 어린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서서 새 노래를 부르는 144,000명에 대해 소개한다. 그들은 두 짐승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영적 순결을 지킨 자들, 즉 우상숭배를 거절하고 자신들을 순결하게 지킨 처녀들이다. 또한 요한은 제사 용어를 빌려 그들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첫 열매’로 드려진 흠 없는 희생 제물이다. 그들이 흠 없는 첫 열매로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은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14장에서 궁극적 승리를 쟁취한 성도들의 순결하고 거룩한 모습을 제시한 것은 우상숭배가 만연한 세상에서 어린양의 순결한 백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라고 도전하고 경고하는 목적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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